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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주말 촛불 문화제 다녀왔습니다.
- 이동현
- 조회 : 7415
- 등록일 : 2008-06-03
호프집마다 오만과의 월드컵 예선 2차전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밖에는 청계천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여느 주말 오후와 다르지 않았다. 10만이 모일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믿기지 않았다.
31일 저녁 북새통을 이룰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청계천 주변은 다소 한산했다. 골목 어귀마다 집합해 있는 전경의 모습만이 이곳에서 촛불시위가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야, 기차다” 여섯 살 남짓의 아이가 소리 질렀다. 아이는 청계광장 앞 도로를 철통같이 막은 전경 버스를 가리켰다. 버스 기차 옆으로 태극기를 이어 만든 천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시청광장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청으로 향하던 박 모 씨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오늘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이곳을 약속장소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 문화제의 열기가 궁금해서 오게 됐다고 했다.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왔다기 보단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왔다는 또 다른 참가자는 “나는 괜찮지만 아이들에게 광우병 소고기를 먹일 수 없어 촛불 문화제에 나왔다”고 말했다. 시청으로 이어지는 거리엔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청 앞 광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프라자 호텔 앞쪽에 ‘민주노총’ 등 익숙한 깃발을 든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촛불 문화제가 기존 시위와는 다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기존의 집회와 다를 게 없다, 문화제라 부르든 집회라 부르든 여기 모인 사람들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며 정부의 고시 철회를 주장했다. 그가 든 피켓에는 수입 철회 외에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보호 등의 구호가 함께 적혀 있었다.
청와대로 이어지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경이 뿌린 소화기와 최루가스다. 앞으로 가려는 사람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전경버스엔 붉은색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불법주차’ 딱지였다. 아고라 시위대 소속의 한 참가자는 “도로를 불법 점거한 건 경찰”이라며 “이명박과 단판을 지으러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참가자는 물병을 던지며 경찰의 봉쇄에 항의했다. 한쪽에선 사람들이 “평화시위, 평화시위”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복궁역까지 진출한 시위대는 효자동 길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한 시민이 바리케이드로 세워진 전경 버스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연설을 했다. 그 뒤에서 전경 몇 명이 다가왔다. "아저씨, 뒤에 뒤에" 시민들이 외쳤지만, 눈치재치 못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아저씨가 끝내 잡혀가자 시민들은 물병을 집어던지고 야유 보냈다. 잠시 후 버스 너머에서 크레인과 같은 기계가 등장했다. 살수차였다. 물이 쏟아지자 시위대가 술렁였다. 한 시민이 태극기를 펼쳐 물살을 막아보려 했지만 거센 물살에 태극기가 날아가 버렸다.
청와대로 향하는 효자동 일대 길은 모두 막혀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도 신분증 확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었다. 확인 후엔 집 앞까지 따라와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 봉쇄선 뒤쪽 효자동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전경만이 줄을 지어 방패를 깔고 앉아 있었다. “야 이거 큰일 났네” 모 수경이 혼자말로 얘기했다. 앞쪽에 앉은, 계급이 낮은 전경은 하품을 했다.
새벽까지 삼청동, 효자동, 세종로 일대 도로는 차량 통행이 통제 됐다. 청와대로 향하는 삼청동 길과 효자동 길에선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고, 세종로 위로는 사람들이 한가하게 거닐었다.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한쪽에선 Jazz 그룹 ‘두 번째 달’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소리는 마치 월드컵 때의 함성을 연상케 했다. 그 소리는 청와대에서도 들릴 만큼 컸다.
그리고 그날 한국 축구 대표팀은 졸전 끝에 오만에 2:2로 비겼다. 득점은 어렵게 하고, 실점은 쉽게 허용하는 대표팀의 문제가 다시 드러났다. 한 번에 패스에 최후방 수비까지 무너지는 한국축구의 고질병은 과연 언제쯤 해결될까. 경기를 보진 않았지만, 경기 내용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