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세저리 이야기
[세저리Weekend] 인문교양 특강 대비 심보선 시인 작품 두 편 감상
- 숙끙
- 조회 : 2697
- 등록일 : 2011-10-02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 심보선
우리에게 그 어떤 명예가 남았는가
그림자 속의 검은 매듭들 몇 개가 남았는가
기억하는가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주말의 동물원은 문전성시
야광처럼 빛나던 코끼리와
낙타의 더딘 행진과
시간의 빠른 진행
팔 끝에 주먹이라는 결실이 맺히던
뇌성벽력처럼 터지던 잔기침의 시절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곁눈질로 서로의 반쪽을 탐하던
꽃그늘에 연모지정을 절이던
바보,라 부르면
바보,라 화답하던 때
기억하는가
기억한다면
소리 내어 웃어 보시게
입천장에 박힌 황금빛 뿔을 쑥 뽑아 보시게
그것은 오랜 침묵이 만든 두 번째 혀
그러니 잘 아시겠지
그 웃음, 소리는 크지만
냄새는 무척 나쁘다는 걸
우리는 썩은 시간의 아들 딸 들
우리에겐 그 어떤 명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림자 속의 검은 매듭들 죄다 풀리고야 말았다
================================
<연인들> / 심보선
우리는 한 쌍의 별난 기러기
다른 기러기 떼가 V자 대오로
따뜻한 남녘으로 날아갈 적에
독수리의 들판과 부엉이의 숲으로 향한다
용맹스런 자들과 친구가 되기 위하여
지혜로운 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밤에 그들이 각자의 위대한 둥지에 깃들면
우리는 해변의 백사장 위에 부둥켜안고
“주여, 우리의 지친 꿈을 돌보아 주소서”
360도 고개 돌려 간절한 기도(祈禱)의 원을 그린 후
서로의 등판에 차가운 부리를 묻고 잠이 든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밤하늘에선 혜성 하나가 기다란 흰털처럼 자라나고
모든 별은 자신의 고유한 은빛 이름을 웅얼거린다
영원은 신(神)이 우주라는 사과 한 알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시간
이 밤의 우리가 내일 아침 깨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꿈속을 헤엄쳐 새벽으로 나아간다
================================
이번 인문교양 특강 강의자이신 심보선 시인의 시집을 구입했습니다. 좋은 시들이 많아 모두 공유하고 싶지만, 저작권 관계상 "사이버 문학광장" 이라는 사이트에 이미 공개된 작품 두 편만 옮겨와 봤습니다. 시인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강의를 들으면 좋을 듯 하여 찾아보니 오마이뉴스에 솔직한 내용을 담은 인터뷰가 있네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07700&PAGE_CD=
세저리Weekend 였습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명예가 남았는가
그림자 속의 검은 매듭들 몇 개가 남았는가
기억하는가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주말의 동물원은 문전성시
야광처럼 빛나던 코끼리와
낙타의 더딘 행진과
시간의 빠른 진행
팔 끝에 주먹이라는 결실이 맺히던
뇌성벽력처럼 터지던 잔기침의 시절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곁눈질로 서로의 반쪽을 탐하던
꽃그늘에 연모지정을 절이던
바보,라 부르면
바보,라 화답하던 때
기억하는가
기억한다면
소리 내어 웃어 보시게
입천장에 박힌 황금빛 뿔을 쑥 뽑아 보시게
그것은 오랜 침묵이 만든 두 번째 혀
그러니 잘 아시겠지
그 웃음, 소리는 크지만
냄새는 무척 나쁘다는 걸
우리는 썩은 시간의 아들 딸 들
우리에겐 그 어떤 명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림자 속의 검은 매듭들 죄다 풀리고야 말았다
================================
<연인들> / 심보선
우리는 한 쌍의 별난 기러기
다른 기러기 떼가 V자 대오로
따뜻한 남녘으로 날아갈 적에
독수리의 들판과 부엉이의 숲으로 향한다
용맹스런 자들과 친구가 되기 위하여
지혜로운 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밤에 그들이 각자의 위대한 둥지에 깃들면
우리는 해변의 백사장 위에 부둥켜안고
“주여, 우리의 지친 꿈을 돌보아 주소서”
360도 고개 돌려 간절한 기도(祈禱)의 원을 그린 후
서로의 등판에 차가운 부리를 묻고 잠이 든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밤하늘에선 혜성 하나가 기다란 흰털처럼 자라나고
모든 별은 자신의 고유한 은빛 이름을 웅얼거린다
영원은 신(神)이 우주라는 사과 한 알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시간
이 밤의 우리가 내일 아침 깨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꿈속을 헤엄쳐 새벽으로 나아간다
================================
이번 인문교양 특강 강의자이신 심보선 시인의 시집을 구입했습니다. 좋은 시들이 많아 모두 공유하고 싶지만, 저작권 관계상 "사이버 문학광장" 이라는 사이트에 이미 공개된 작품 두 편만 옮겨와 봤습니다. 시인에 대해서도 조금 알고 강의를 들으면 좋을 듯 하여 찾아보니 오마이뉴스에 솔직한 내용을 담은 인터뷰가 있네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07700&PAGE_CD=
세저리Weekend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