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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 수라간, 살림의 여왕들
- 엄지원
- 조회 : 3198
- 등록일 : 2012-02-09
방학의 시작과 함께,
상큼하게 문화관 밥 먹은 지 어언 6주가 지나갑니다.
다음주가 되면 1주일 간의 자체 봄방학을 맞아 각자 고향집으로 잠시 몸을 누이러 갈 터.
그간 있었던 세저리 수라간,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를 모아 봤습니다.
이름하야 "세저리 수라간, 살림의 여왕들"
# 그녀들의 통 큰 설거지법(1)
세저리 수라간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것은 다름 아닌 저 엄지였습니다.
차마차마, 저의 입술로 고백하기엔 치욕스럽지만
세저리의 재미를 위해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심정으로 읊어 보겠습니다..
1월 2일, 대충 기숙사 입사를 마치고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반찬을 넣고자 냉장고를 열었는데
지난 여름부터 자리를 차고 앉은 반찬이며, 먹다 넣어 둔 음료수와 커피, 무공해 잼으로 발효되고 있는 과일류,
남몰래 챙겨 먹기 위해 깊이깊이 넣어 둔 각종 즙까지... 냉장고는 미어 터지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저와 깡민상궁은 두 팔을 걷어 붙이고
냉장고 청소(실상은 거의 다 버리는 작업)를 시작했습니다.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청소 끝!
하지만 문제는 음식물 쓰레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음식물 쓰레기통이 따로 없는 문화관, 저는 고민 끝에 봉지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언니가 알아서 해볼게"
나름 언니라고 도운다던 깡 상궁의 살가운 손길도 만류한 채, 위엄있는 걸음으로 적진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평소 컵라면 먹고 하던 버릇대로 한봉지 가득한 음식물 쓰레기를 좌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습니다.
쉬이익~~ 시원스레 물 내려가던 소리를 듣고 돌아서던 찰나,
김치가 둥둥 떠 있는 빨간 물은 점점 차올랐고 급기야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저는 그제서야 깡 상궁을 불렀고,
능숙하게 뚫어뻥을 들고 온 깡상궁 앞에서 저는 한없이 작아져야 했습니다......
뚫어뻥으로 힘있게 김치를 건져내면서 하하핫 웃어대던 그녀의 웃음소리는 한참이나 저의 귓가를 멤돌았습니다.
# 깡 상궁의 전자렌지 사용법
전날 냉장고 청소와 뚫어뻥 작동실력에서도 보여지듯,
깡 상궁의 이미지는 "살림 좀 해 본 女자"의 스멜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식사 시간, 착착 반찬을 꺼내는 빠른 손놀림. 익숙하다는 듯 밥을 지어내는 숙련된 솜씨는 역시나 살림여왕의 진면목을 보는 듯 했습니다. 세저리 수라간의 대장 상궁감으로 깡 상궁이 딱이다는 결론을 내리려던 찰나, 사건은 벌어졌습니다.
파파팍- 치이익-
국 대신 3분 짜장이라도 데워 먹자며 잠시 기다리라던 깡 상궁.
그녀가 보여 준 것은 그녀의 고향, 부산의 불꽃축제에 버금가는 불꽃들의 향연이었습니다.
파란색, 초록색의 불꽃은 10초 간 렌지의 암흑을 채웠고
덕분에 언니들은 잠시 삶의 고단함을 잊고 파워레인저의 동심으로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봉지째 렌지에 넣고 돌린 것은 몰라서가 아닐 겁니다.
지친 언니들을 위한 깡 상궁의 속 깊은 이벤트일 것입니다......
# 그녀들의 통 큰 설거지법(2)
평소 시원시원한 말과 행동,
그리고 라이더 가죽 자켓을 즐겨 입으며 터프녀의 면모를 보여 준 효리상궁.
역시나 설거지법도 남달랐습니다.
전날 제샘 수업때 먹고 남긴 감자탕으로 가볍게(?) 점심을 해결한 세저리 유생들.
그날 설거지 당번이었던 효리는 살을 바르고 모아 둔 뼈 한무더기를 들고 "그 곳"으로 갔습니다.
잠시 후, 이어지는 하이톤의 비명.
문제의 장소에서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변기에 턱하니 걸려 있는 주먹만한 감자탕의 뼈들....
엄 상궁의 김치사건과는 격이 다른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하하핫, 이게 왜 안내려가지?"
해맑은 쾌女의 미소로 화답하는 그녀, 횰.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이어지는 다음 말은 더욱 대담했습니다.
"큰 거(상상에 맡김..) 싸도 내려가잖아, 왜 안되는 거야?"
# 정소희의 "복수할 거야~~"
저희는 쌤들과의 식사가 있는 목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 거주민 2~3명씩
당번제로 점심, 저녁 밥과 간단한 요리를 해먹고 있었는데요.
그 중 정상궁팀은 고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멤버였던 리민편집장과 동현브로 역시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먹던 부류라, 그닥 상차림에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팀의 유일한 자매, 정상궁이 전면에 나서 요리를 진두지휘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점심과 저녁 무렵.
402호 부엌 찬창 위에 소형 노트북을 올려 놓고
음악 선율에 맞춰 요리하는 그녀의 긴 팔과 얇은 손가락은 정말 매혹적이었습니다.
요리 중 간간히, 싱긋 웃어 보이는 새색시표 미소도 아름다웠구요.
하지만... 우월한 비주얼에 비해 맛은 어딘가 갸우뚱..
맛있다, 맛없다 딱히 말하기 미묘한 지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요리에 욕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녀는 역시나 쿨하게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정소희로 점을 찍고, 요리의 달인으로 변신한 것은 어제 사건 이후였습니다.
그날도 어느 블로그에 있던 레시피를 따라 꽁치김치찌개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냈습니다.
"우와, 맛있겠다"는 유생들의 첫 일성 이후 급격히 잦아진 말과 느려진 숟가락질.
더군다나, 입맛이 까다로운 땡땡유생은 "맛있게 잘 먹었다"며 웃어 보였지만,
땡땡유생의 손은 가득 담긴 국그릇을 살포시 가리고 있었습니다.
이날의 대규모 리콜사태 이후, 그녀의 잠자던 요리 자존심은 꿈틀댔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는지도. "복수할 거야~~~~~"
그리고 당일 저녁.
민소희 상궁으로 빙의한 정상궁은
식사시간 1시간 전부터 조수 리지현, 동현을 집합시켜 필살의 요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문화재급 미각을 자랑한다던, 돈 상궁도 모셔와선 말이죠.
그리고 뚝딱뚝딱~~
김치, 양파, 피망, 라면까지 들어간 특제 김치부침개가 완성!!
거기에 계란옷을 입힌 두부와 에그오물렛도 완성!!!!
마무리로 피망 데코레이션까지!!!
문화관표 호텔식 디너가 완성되었고, 한입 베어 문 부침개맛에 중독된 유생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진정 맛있었습니다. 몇시간 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오나 놀라운 맛의 변화는 확실했습니다.
이로써 한다면 하는 정 상궁의 위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p.s
깨알같은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꿘샘이 사주시는 밥을 먹으러 가야 하기에 급! 마무리 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