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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포토] 이중섭의 황소 타고 역사여행
- 김태준
- 조회 : 3256
- 등록일 : 2012-09-25
안녕하세요. 편짱 유성애입니다. 지난 21일 인문교양 특강 수업으로 다 같이 서울 부암동에 있는 서울미술관에 다녀온 것 아시죠?
태준이가 미술관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잘 편집해 올렸는데, 당시 이주헌 관장님께서 해주셨던 특강 또한 매우 유익했던지라 여기 간단히 정리해 나누고자 합니다. 미술평론가이면서 한겨레 미술 담당 기자였던 관장님께서 역사적인 그림들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설명도 이야기 식이라 한 편의 책을 듣는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정헌 오빠 말마따나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평생을 바친 작품들을 우리가 지적 장신구로 ‘소비’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이제라도 그네들의 삶과 노력을 알고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며 글을 쓰듯, 어쩌면 예술도 대중이 바라봐주길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쨌든 특강은 <역사의 미술관>이란 제목으로 진행됐습니다. 큰 맥락은 결국 미술도 인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중에서도 특히 서양의 역사화가 인문학의 보고(寶庫)라는 것이었습니다. 관장님 말씀에 의하면 동양에서는 자연을 그린 ‘산수화’를 최고로 꼽는 반면 서양에서는 역사적 사건들이 그려진 ‘역사화’를 최고로 친다고 합니다. 동양 특유의 자연중심, 서양 특유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역사화(History painting)는 문학 작품에 빗대자면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같은 서사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안에 사랑과 배신, 복수와 같은 이야기가 있고 무엇보다 인간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아니어도 인류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준다면 ‘역사화’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주제별로 보는 역사화>란 구분 아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같은 기독교 역사화, 그리스 신화가 그려진 <신화 주제의 역사화>, 영국이나 로마의 역사가 드러난 <격동의 역사화>라는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관장님께서 하나하나 그림들을 짚어가며 친절히 설명해주셨는데, 직접 그림을 보며 들어야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서 더 자세히 쓸 수 없는 점이 아쉽네요. 특별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30대와 60대에 어떻게 다른지를 눈으로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젊고 혈기왕성했던 30대의 미켈란젤로는 그림에서도 교만과 자신감이 넘쳐흘렀지만 나이가 들며 겸손해진 60대의 미켈란젤로는 그림에서 순교자 바르톨로메오가 한 손에 자신(미켈란젤로)의 ‘인간 껍질’을 들고 있도록 그려 넣지요. 관장님은 대가의 겸손을 볼 수 있는 부분이라 설명하셨는데, 그는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믿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망했던 건 아닐까요.
강의의 마지막에는 드디어 기다렸던 <이중섭과 화가들>이 등장합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란이 계속되던 1952년 겨울, 뜻을 같이했던 이중섭과 박고석, 손응성, 이봉상, 한묵 등의 작가들은 부산에 있는 르네상스 다방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친목의 공간을 넘어 그들의 작품이 걸리는 전시 공간이었다고 하네요. 다방에서 함께 그룹전을 가진 화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전시 소개문에서 볼 수 있듯 “온갖 악조건과 고난 속에서도 한국미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열정과 염원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의 삶에 대해 듣고 나니, 그림이 전과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무리하지만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전쟁 상황, 그 곳에 우리가 놓여있어도 펜을 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만한 절박함이 스스로에게 있는지.
간략하게 정리하려던 글이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는 특강이 끝나고, 실제로 전시된 그림들-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 -을 감상하기 위해 강의실을 나섰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미술관 관람시간이 7시까지인데 ㄱ6시 반 정도에 끝나 실제 감상시간이 다소 적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맥락과 설명을 듣고 나니 예전보다는 훨씬 더 감상이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들도 대부분 강의가 만족스러웠다는 반응이었고요.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다는 ‘석파정’은 공사 중이라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문교양특강’이란 수업명대로 또 다른 인문학적 교양을 쌓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관장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설치미술가이자 ‘3인치 회화’로 유명한 강익중 씨가 수화 김환기 화백의 부인 ‘김향안’ 씨에게 들은 조언이라고 합니다.
“아침을 꼭 먹어라. 팁을 많이 주어라. 기회와 유혹을 분간 할 줄 알아라.”
거칠게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심신이 쇠약해지고, 그러다 보면 쉬운 길만 찾게 돼 넘어지기가 쉽다. 네가 만나는 종업원 뒤엔 그들의 가족, 즉 사람 뒤에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라. 무엇보다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나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저 조언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 제 맘대로 써내려간 세저리판 ‘특강기사’였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합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옷 여미시되,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에도 눈길 주는 가을날 보내세요.
* 사진의 저작권은 김태준 및 허정윤에게 있습니다.
** 김태준 군이 쓴 포토뉴스에 오후 11시 기사를 덧붙였습니다.
*** 전시타이틀의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 ‘둥섭’은 ‘중섭’의 서북방언입니다.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참고자료)
미켈란젤론의 ‘최후의 심판’ http://blog.daum.net/999ajussi/15732306
서울미술관 전시소개 http://www.seoulmuseum.org/museum/b/exhibition/11
르네상스를 꿈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 ("상세정보" 클릭) http://www.daljin.com/?BC=gdv&GNO=D001850&WS=24#dum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