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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뉴스] 꽃이 되고 싶은 남자
- 안형준
- 조회 : 2907
- 등록일 : 2013-03-30
절찬리 판매된 <벼랑에 선 사람들>의 후속편 노인기획은 5기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1편만큼 높은 수준을 기대하는 제정임 선생님의 지휘 아래 모두가 각자의 주제를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보람양과 필자의 주제는 <노인의 성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터부시하고 민망해하는 주제인 탓에 취재가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귀차니즘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사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모두가 분주해지고 초조해졌습니다.
노인 성문제는 곧 당신의 50년 후 문제. ⓒ 천조국
파트너 보람이가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미안한 감정에 미뤄왔던 노인 카바레를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습니다. 취재 장소는 종로 한복판에 위치한 전통 있는 노인문화의 메카 ㄱ노인 카바레였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쭈뼛거리다 입장료 천원을 내고 입장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쉴 틈도 없이 16비트의 뽕짝 멜로디가 전두엽을 타고 흐르자 필자의 몸은 경직되고 혼이 빠져나가는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카바레에 들어선 필자의 모습. ⓒ 뭉크
‘일단 안정을 취하자’라는 생각에 홀 가장자리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천천히 주변을 탐색했습니다.(20대 초반에 자주 갔던 클럽과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허허) 오후 1시임에도 많은 노인이 짝을 지어 비트에 몸을 맡기는 모습은 문화충격이었습니다. 과거에 뉴스에서 보던 어두침침한 카바레의 모습이 아닌 밝고 깨끗한 시설과 춤을 추며 행복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은 필자의 선입견이었음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필자가 상상한 끈적끈적한 카바레의 모습. ⓒ 몰라 ㅠㅠ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이 필자의 양 볼을 쓰다듬으며 “총각이 이런 곳을 왜 왔나 호옹옹”이라고 말씀하실 땐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웃으며 대충 얼버무리고 다시 관찰을 시작했습니다. 옷을 곱게 입고 앉아서 도도한 표정으로 파트너를 기다리는 할머니들과 매의 눈으로 파트너를 찾고 다니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필자의 굳어버린 가슴을 다시금 뛰게 만들어 줬습니다. (사실 지난 12월 필자는 4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여자 보기를 돌같이 했습니다.)
웃고 있는데 눙물이 나네. ⓒ 이말년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춤을 추자며 손을 내밀 때 할머니는 꽃이 되었습니다. 황혼의 나이에도 사랑을 찾아 떠나는 노인들을 보며 다시금 필자의 마음도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습니다. 귀찮았던 취재를 꾸역꾸역 하며 많은 것을 얻어 제천에 돌아왔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아물지 않았지만 언젠가 내 이름을 불러줄 여자를 기다리며 싱숭생숭한 밤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포촌술고래 세저리 편집장은 기자들에게 양식을 제공하라!
제발여....... ⓒ 필자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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