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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제게 세저리란
- 김지영
- 조회 : 2800
- 등록일 : 2013-12-09
저는 참 게으른 학생이었습니다.
늦잠을 자다 지각하기 일쑤. 방학 땐 따로 잘 곳을 구하지 못해 강의실 소파에서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자다가 교수님께 혼난 적도 있습니다. 불안했고, 자신도 없었습니다. 가진 거라곤 지방대 졸업장과 8학기 평균 3.01이라는 초라한 학점뿐.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외국어 공인시험 점수도 없었습니다. 이쯤 되니 필기시험은 합격은커녕 서류전형 통과가 제겐 꿈과 같았습니다.
졸업이 다가오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주제에 언론은 무슨’, ‘그냥 대학 졸업하고 영업이나 뛸 걸’, ‘교수님들 말만 믿었었는데’…. 회의가 들었습니다. 2년 동안 배운 게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아까웠고, 교수님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마지막 학기 모든 걸 단념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그땐 그랬습니다.
그러던 중 제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교수님 추천을 통해 언론사 면접 기회를 얻게 됐고, 운 좋게 합격해 지금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입사 초 금융사를 출입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부로 파견됐습니다. 이후 정치부로 정식 발령받아 야당을 6개월 간 출입하다 올 여름 청와대로 출입처를 옮겼습니다. 그때야 알겠더라고요. 대학원 2년 동안 뭘 배웠는지요.
배우지 않았다면 내가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 회사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기자로서 이상을 가질 수 있었을까, 부서에서 나름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을 강요받는 것만 같던 토론, 억지로 쓰던 글, 주말만 되면 밀린 과제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겨운 수업, 매 순간마다 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떻게 해왔는지 몸이 기억하더라고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회사는 일을 시키는 곳이지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교육은 일을 시킬 수 있을 정도로만 이뤄집니다. 나머진 본인이 얼마나 배우려 하느냐, 얼마나 많이 알고 입사했느냐에 따라 다르죠. 전 대학원에서 일을 배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얻은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은 친구와 동료입니다. 지난주 동기들과 조촐한 송년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표현은 못했지만 동기들에게 참 고마웠습니다. 어릴 때 함께 자란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업무적 고충, 동료 기자들은 알지 못하는 제 인간적인 모습, 이 모든 걸 이해해주는 게 저널리즘스쿨에서 만난 동기들이더라고요.
그렇기에 전 제천에서 보낸 2년이란 시간이 너무 감사합니다.
**다들 일할 때 사진을 본문 위에 넣어서 저도 넣어봤어요. 그나마 저게 멀쩔한 사진이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