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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장 칼럼> KTX매거진 칼럼 - 신체를 담는 그릇, 의자
- 시각영상디자인학과
- 조회 : 1392
- 등록일 : 2023-08-16
“신체를담는 그릇,의자”
의자는 그 안에 신체를 담는다. 여기에 더해 영혼을 품고 위로하고 안식을 주는 그릇이다.
핀란드 가구 회사 이케아(IKEA)의 한국 진출이 계기가 되어 디자인 가구가 단연 화제다. 이뿐 아니라 최근 10여 년간 감각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품 의자와 북유럽 의자가 붐이 되고 있으며, 해외 의자 가구전이 잇따라 개최되기도 했다. 모던 의자의 원류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이들 줄기를 이해하면 의자를 파악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근대의 명작 의자 중 어느 날 디자이너가 천재적인 영감으로 한순간에 갑자기 탄생시킨 것은 하나도 없다. 로댕의 “세상에 완전한 창조란 없다”란 말처럼 이들 의자는 과거 명작 의자부터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발상이 더해져서 태어났다. 즉 명작 의자의 역사란 면면히 이어지는 ‘재(再) 디자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 4대 원류는 중국 명조 의자(Ming Type Chair), 윈저 의자(Windsor Chair), 셰이커 의자(Shaker Chair)와 토넷 사(社)의 의자(Thonet Chair)다. 물론 모든 의자 디자인이 이 네 개의 형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는 어렵고 학자에 따라서 다른 견해를 가질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흐름을 만든 것은 바로 네 개의 의자다.
명시대의 의자를 이은 대표작으로는 덴마크 디자이너인 한스 웨그너가 디자인한 ‘차이니즈 의자(Chinese Chair)’(1943년)가 있고, 이 계보를 따라 수많은 의자가 제작되었다. 윈저 의자 계보로는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의 ‘코노이드 의자(Conoid Chair)’(1960년) 등이 있다. 셰이커 교도들의 검소하고 겸허한 셰이커 의자 계보로는 지오 폰티(Gio Ponti)의 ‘슈퍼레제라(Superleggera)’(1956년)나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i Mackintosh)의 ‘힐 하우스 1(Hill House 1)’(1902년) 등이 있다. 토넷 의자 계보의 ‘비엔나 의자(Vienna Chair)’(1871년)를 본떠서 굽힌 나무 표현을 활용한 것으로는 굽힌 의자 표현을 금속에 응용한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바스큐란 의자(Basculant Chair)’(1925년) 등이 있다.
근대의 명작 의자 중 어느 날 디자이너가 천재적인 영감으로 한순간에 갑자기 탄생시킨 것은 하나도 없다. 로댕의 “세상에 완전한 창조란 없다”란 말처럼 이들 의자는 과거 명작 의자부터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발상이 더해져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디자인 제품 중에서 이처럼 의자, 특히 1인용 의자가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소유의 대상으로 수집되는 것일까. 의자가 인간의 신체를 닮았고, 그 신체를 담는 그릇이 기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고학자 앙드레 르루아 그루앙(Andre Leroi-Gourhan)에 의하면 인류의 초기 유물은 인체의 형태를 모방하여 제작했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팔뚝에서 주먹까지의 형태를 흉내낸 망치나 돌도끼이며, 물이나 물건을 담기 위해 양손을 오므려서 옮기는 형태에서 끝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 등의 형태가 발전했다.
이렇듯 디자인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형태에서 발전 변형되어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토기처럼 양손으로 담는 형태는 인체의 여러 기관과도 유사하다. 뇌를 담는 두개골, 심장을 감싸는 갈비뼈, 여성의 자궁을 품은 골반 등 뼈는 중요한 신체 기관을 보호한 다. 그릇이 내용물을 감싸 안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면, 의자는 인간의 신체를 담는 그릇이다. 의자는 일종의 그릇이며 단지 스케일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디자인사를 연구하는 디자인과 교수로서 수많은 명품 디자인을 눈으로 보고, 앉아 보았다. 하지만 이들 세계적 디자인 명품을 보면서 나 자신이 이들을 소유하고 싶은가, 그런 삶을 지향하는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을 지녀 왔다.
소위 세계적 척도의 일류에 나는 감동하지 않는다.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암체어(Paimio Armchair)’, Y의자, 스툴60, 스완 의자가 각각 거실 의자, 식탁 의자, 비상용 의자, 영화 감상용 의자로 놓인 지인의 거실에서 그 완벽한 형태들의 조화로 이루어 낸 정연한 아름다움에는 물론 감탄한다.
하지만 금액과 가치를 모두 떠나 ‘나만의 의자’라는 것이 존재한다. 자신의 사고를 정리하고, 일기를 쓰고, 독서의 즐거움을 함께 하고,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는 등 생각을 보듬고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에, 내게 의자가 갖는 역할과 의미는 다른 가구와는 남다르다. 그래서 1인용 의자란 내적 은밀함과 편안함, 안식을 주는 존재여야 하며 남에게 보이기보다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여야 한다.
지금은 하루 일과가 끝나고 급한 마감이 없을 경우 연구실에 있는 작은 베이지색 1인용 소파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 지극히 행복한 순간이다. 이 의자는 유학 시절 심신이 지쳤을 때, 무언가 나 자신을 보듬고 위안과 격려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짬을 내어 고르고 골라 산것이다. 그 후 10여 년 이 작은 1인용 소파만큼 나를 깊숙이 아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고와 연구, 고민과 반성, 결단이 이루어진 곳이다. 이 무명의 작은 1인용 소파가 나의 명품의자다.
디자인 하면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 멋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디자인은 미술작품과 달리 감상 대상이 아니라 기능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지닌다. 이때의 기능이란 물리적 기능뿐 아니라 심리적 기능도 있으며, 심리적 기능 중 하나가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인간의 전 신체를 위탁받아 받쳐주는 1인 의자야말로 물리적 기능과 심리적 기능의 조화를 강하게 요구받는 디자인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명품 의자란 결국 그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자이며, 누구나 자신의 신체와 영혼을 담을 그릇을 필요로 한다.
글 신희경 세명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명조 의자(중국, 1300년대~)
중국에서는 수백 년간 의자 생활을 해 왔다. 일반 서민에게까지 보급되어 완성의 경지에 이른 것은 명나라(1368~1644) 때다. 이 시기의 의자가 그 후의 발전 원형이기에 ‘명조 의자(Ming Type Chair)’라 이름 붙였다. 심플한 형태와 균형감 있는 비례, 기술 면에서는 나무의 특성을 살린 우수한 조립 기술이 특징이다. 청나라에 이르러 유럽으로 전해져 유럽 의자 제작에 다양한 영향을 주었다. ‘모던 가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덴마크의 한스 웨그너(Hans Wegner)에게 강한 영향을 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윈저 의자(영국, 1600년대~)
광대한 숲을 지닌 영국의 요크셔 지방에서 농민들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나무를 벌목하여 제작한 것이 윈저 의자(Windsor Chair)의 원류다. 장식이 없고 튼튼하며 낭비가 없다. 그리고 한 명의 장인이나 제조사가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익명의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개선, 개량하여 기능성을 높여 온 익명적 디자인이다. 그렇기에 실용적이며 소박하다. 제조 면에서도 근대 의자 제작의 시초라할 수 있다. 부품별로 분업 생산 체제로 만들었으며 산업혁명 이후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18세기에는 미국까지 전파되었다.
셰이커 의자(미국, 1700년대~)
셰이커교도는 18세기,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 동북부에 이주하여 교리를 실천하기 위해 ‘셰이커 빌리지’라는 자급자족의 생활 공동체를 조직했다. 당연히 생활을 위한 의자도 만들었는데, 이것을 셰이커 의자(Shaker Chair)라 부른다. 허식을 없애고 기능을 추구한 셰이커 의자는 모던 의자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토넷 의자(오스트리아, 1800년대)
토넷 의자(Thonet Chair)는 ‘어나니머스 디자인(Anonymous design, 익명적 디자인)’을 기점으로 사용자의 입장에서 발달한 3대 원류와 달리, 뛰어난 기술자 1인이 만든 의자다. 19세기 중반에 오스트리아의 미하엘 토넷(Michael Thonet)에 의해 개발된 ‘나무 밴드 기술’은 의자 제조계에 혁명을 몰고 왔다. 의자는 인간이 앉았을 때 자세를 유지하는 도구이며, 많은 사람에게 이용된 아름다운 형태가 나무 밴드 기술에 의해 가능해졌다. 나아가 그는 지금도 충분히 통용되는 근대 생산 방식을 고안했다. 원재료를 쉽게 입수할 수 있는 산림 근처에 공장을 짓고 각 부품의 제조를 철저하게 분해하여 복잡한 작업을 단순 작업으로 바꾸었으며 소비지에서 조립하는 방식도 구축했다. 그 결과 생산성, 기술, 디자인, 가격, 튼튼함, 가벼움, 수리의 간단함 등 근대 의자가 추구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그렇기에 전 세계에서 2억 개 이상이 팔렸으며 지금도 판매 중이다.
- 담당부서 : 시각영상디자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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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 2024-10-26